2025년 회고
항상 첫 문장을 여는건 어려운 것 같다. 글 뿐만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도 그렇다. 25년에는 의식적으로 계속 불편함을 마주한 해였다. 굳이 잘했나 못했나로 나누고 싶진 않다. 그저 서툴고 벅찬 하루들을 지나왔고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꽤 정신이 없었어서 사실 오늘이 26년인지도 잘 와닿지 않는다. 나는 아직 재작년 12월 호주 시드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보면, 내 2025년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척척학사
작년 초에 시작한 척척학사도 어느덧 한 살이 되어간다. 지금까지도 많은 학우들이 서비스를 이용해주고, 피드백을 보내준다.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좋은 팀원들을 만나 꽤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기회들도 얻을 수 있었다.
의외의 배움도 있었다.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창업 경진대회에 나갔던 날이 떠오른다. 그날은 아침에 기술 면접을 보고, 점심에는 학교로 돌아와 발표 심사를 받아야 했다. 전날 밤을 새운 채 면접을 마치고 곧바로 학교로 이동해 왜 우리에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했다. 밤을 지새워 예민했었단 핑계를 깔아두고 말하자면 그날의 나는 조금 거만했다. 타겟 유저는 학생인데, 평가를 하는 분들은 그 타겟이 아니었고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 자꾸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말처럼 들렸다.
애초에 진심으로 창업을 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수익 모델에 대한 질문에는 쉽게 공감대를 만들지 못했다. AI 시대가 오면서, 대부분의 CRUD 비즈니스 로직은 결국 에이전트로 대체될 것이라 생각한다. 척척학사 역시 그 흐름 위에 있는 서비스다.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을 정리해 예쁜 UI 껍데기를 씌워 사용자에게 더 편리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 과도기에서 보수적이고 덩치가 큰 단체보다 소수의 개인이 기민하게 움직여 조금 먼저 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척척학사의 가치는 터미널에서 단순하게 에이전트를 실행해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가져가고 싶었던 건 UI나 기능 그 자체보다, 이 문제를 먼저 정의하고 조금 더 익숙한 사람이 한 발 앞서 데이터를 쌓아온 경험이다 AI가 로직을 대신하게 되는 시대라면,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대신할지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데이터다. 척척학사는 그 데이터를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깊게 모아온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제품을 운영해보고, 대회에 나가 평가를 받아보며 느낀 건 하나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은 보수적이라는 것.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서비스라 해도, 결국에는 좋은 타이밍과 시장 상황 속에서 선택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여행
올해도 감사하게도 여러번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오사카, 도쿄, 베트남 나트랑 그리고 미국 뉴욕을 다녀왔다. 일본과 베트남은 가족, 연인과 다녀왔고 미국은 구직이 마무리되고 혼자 다녀왔다.
24년 여행의 인상 깊었던 나라는 호주였다면, 25년은 미국이었다. 정말 크고 높으며 정신이 없었다. 도심 가운데 사람들의 발걸음도 정말 빨랐고 뉴욕은 무단횡단이 합법이기에 멈추지 않았다. 막연하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을 해왔었는데 처음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ㅋㅋㅋ
알아본 거라곤 숙소랑 비행기만 예약하고 간 여행이었기에 입국하고 우버 정류장을 찾는 것 조차 물어가며 찾았다. 주머니 사정도 여유가 있지 않았기에 피자와 타코만 먹고 다녔지만 정말 여기저기 많이 걸어다녔다. 이러한 경험들은 삶에 대한 역치를 높여주는 것 같다. 살아가며 다가오는 많은 시련들에 대해 덤덤하게 대할 수 있게 된다.
취업
8월에 입사하고 정말 시간이 녹은 것 같다. 평균적으로 회사에 하루 12시간 정도 있던 것 같다. 빠르게 그리고 바르게 만들어야 한다. 여태 경험했던 제품 중 가장 많은 유저들이 있기에 정말 재밌다. 똑똑하고 멋진 동료들 가운데에서 정말 많이 배우고, 20대 막바지 사회인으로써 많은 책임감에 짓눌리고 있다.
많은 컨택스트 가운데 높은 집중도를 유지해야하는데 동탄으로 이사를 가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점이 제일 불편했다. 그래서 사내 대출이 나오기전까지 고시원 여기저기에 살아보았다. 한평짜리 방에 월 80~100만원을 내고 살며 매일 아침 일찍 회사에 가 샤워를 하기도 했다. 어느정도 익숙해지곤 주에 몇번은 재택 근무를 하며 출근 하는 날엔 모텔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어차피 잠만 자기에 나름 버틸만하고 효율적이라 생각하는데, 독특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긴 하다.
마치며
생각해보니 학업도 마무리했다. 18학점 취업계를 내고 졸업요건 어학 점수도 회사를 다니면서 충족시켜야 해서 시간들이 조금 벅찼지만 뭐 잘 지나갔다. 헛구역질도 하고 코피도 흘리면서 지내온 꽤나 터프했던 25년인데, 막연했던 순간들 해낼 수 있다 기도하며 어떻게 잘 버텨온 것 같다.
26년에도 여전히 서툴겠지만, 무엇이든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관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보겠다.
25년 나의 사람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