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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상반기를 마치며

2025년 상반기를 마치며

향유고래는 먹이를 먹고 소화하지 못한 것들을 뱃속에서 뭉쳐 용연향을 만든다고 한다. 처음엔 비린내가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깊고 은은한 향을 내뿜게 된다.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지난 6개월을 돌아보니, 내 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수많은 경험들이 나를 스쳐지나가면서 마음 어딘가에 쌓여갔고, 그것들이 응어리져 이제야 무언가 말하고 싶은 형태가 되었다. 매일은 바쁘고 길게 느껴졌지만, 정작 반년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렸다.

지나간 일

몇 달 전 단순한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척척학사가 어느새 3000명의 유저를 앞두고 있다. 숫자로만 보면 성공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배운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팀원 두 명에서 시작해 일곱 명까지 늘어나는 과정을 겪으며, 코딩 외에도 팀을 이끄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팀원들이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진 사람들의 방향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에서도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 구성원이기 전에 각자 한 사람으로서의 부모님을 보게 되었고, 그들도 나처럼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설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다시 사회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관심 있던 회사들에 지원했고, 운이 좋게도 몇 곳에서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날 적부터 몸이 약했던 나는 어린 시절 예민하고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그 예민함의 역치를 올리고, 감정들을 나름대로 소화시키는 연습을 해온 것 같다.

그 결과 겉으로 보기에는 꽤 무던한 사람이 되었다. 감정 변화가 적고 웬만한 일에는 쉽게 용기를 내는, 그런 사람 말이다. 정말로 그렇게 변한 건지, 아니면 어딘가 내면 깊숙한 곳에 가둬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나온 세월을 통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걸 체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편도를 절제했다. 3주간은 제대로 먹지 못해 얼마 남지 않던 살마저 빠졌지만, 지금은 모든 게 회복되었다.

꽤나 많은 도전을 했다 그리고 그 사이 부끄럽고 힘든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꾹 참고 해내려 노력했고, 지금 돌이켜보니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지켜주고 있다.

가치를 두는 것

상반기를 보내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움직이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건 이래야 해", "저건 저래야 해" 하며 틀에 가두려 하면 본능적으로 반발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좁아지지 않기 위해 산다는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내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 정해놓은 길만 따라가는 건 재미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배우고, 읽고, 여행한다. 호기심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자유가 계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성취도 필요하다는 걸 안다.

새로운 시작들

상반기가 끝나갈 무렵, 몇 가지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이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나만의 서재를 갖게 되었고, 새로운 회사에서의 적응도 시작될 예정이다.

한글도 모르던 때부터 다녔던 잠실 교보문고와도 이제 멀어지게 된다. 그곳에서 보낸 많은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은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새로운 동네에서 또 다른 책방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